내가 만들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

2021. 4. 26. 02:14Thoughts

시험이 거의 다 끝난 기념으로(마지막 테이크홈 시험 네 문제 풀고 한 문제 남음) 최근에 깨닫게 된 내용을 끄적이러 왔다.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 인터뷰 영상을 보면 당신이 후배 창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지 말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줘라"라는 조언을 해준다.

 

첫번째 프로젝트를 정하고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한 작년 이맘때쯤의 나는 이 말을 듣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라면, 또는, 본인이 생각했을 때 세상은 정말 이런 식으로 변해야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안돼도 되게 한다는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람들이 쓰지 않는다고 포기할 거였으면 시작하지도 말았어야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거라면, 내가 "세상은 이렇게 변해야 되는게 맞아"라고 주장할 근거는 1도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안써주는데 세상을 어떻게 바꿀거냐는 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제프 베조스가 남긴 말이 있다. "발명은 시장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오직 고객의 채택만이 시장을 파괴합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멋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 간단한 사실을 정말로 깨닫는 데까지 1년이 걸렸다.

 

얼마 전 대학동기 형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는데도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나는 쓰고 싶다는 생각 덕분이었다"라고. 돌이켜보니 정말 바보같은 말이다. 시장에 내놓아보니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았다면 고집만 부릴 게 아니라 접근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봤어야 하는게 옳았다.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을 고집만 부리며 날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기억이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은, 그렇다면 지금 어떤 서비스가 잘 안되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건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냐는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초기 유저 100명을 모으는 데 1년이 걸렸다고 했다. 핀터레스트도 마찬가지로 초기 유저를 모으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아이디어가 미국의 페이스북이나 한국의 토스처럼 시작하자마자 빵 터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프로젝트를 접을지 말지, pivot을 해볼지 말지 등의 판단은 언제 내려야 하는가? 지금 대략이나마 가지고 있는 생각은 retention을 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retention은 내가 생각하기에 서비스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봐야 할 지표다. 우리가 얻는 넘버들 중에 껴있는 마케팅 거품을 가장 정직하게 걷어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광고 카피가 매력적이어서 클릭해봤지만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은 고객들은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이 고민은 계속 해보아야 할 주제인 것 같다. 만나는 창업가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다녀야겠다.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방향은 아닌데"라는 문제도 조금은 남아있다. 나는 성악설을 믿기 때문에 사람들이(특히 대중으로 규합되었을 때) 원하는 방향은 항상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마약을 하고 싶어한다고 마약 만들어다 주지는 않을 거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그렇다면 세상에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지(+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내리는거냐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만약 그 기준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라면, 윗윗문단에서 언급한 내용과 곧바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벌써 두시 반... 시험문제나 마저 풀고 와야겠다. 오늘은 좀 일찍 자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