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2. 03:40ㆍThoughts
며칠 전 Sendbird라는 챗 API 스타트업이 시리즈C 펀딩을 마치며 한국의 12번째 유니콘(미국 법인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한국산 유니콘은 아닌데, 한국인들이 창업한 회사라서 그렇게 쳐주는 것 같다)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관련 아티클 링크를 타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창업자이자 CEO로 활동하고 있는 존킴(김동신) 대표의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었는데, 굉장한 지식과 통찰력을 재치 만점 언변으로 풀어내는 모습에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유튜브 비디오 몇 개를 메모까지 해가며 돌려본 다음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똑똑하고 멋있는지 궁금해져 검색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3년 정도 미국에서 살다가 왔는데, 서울대 컴공과에 다니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다가, 창업 생활을 시작해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는 도시전설이 토막글들로 나왔다. 역시 어릴 때부터 범인은 아니었구나 생각하던 도중 그의 옛날 블로그에 이르렀다.
그나마 가장 최신 글인 2014~5년의 글들을 몇 개 읽고 난 뒤에는, 솔직히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너무 너무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기록들은 곧 내가 하고 싶은 생각들이었고, 그가 살아온 삶은 내가 살고 싶은 삶 그 자체였다. 지금의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볼 수 없는 날 것의 패기와 도전정신이 살아있는 글들이 800개나 넘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한없이 감사했다.
최근의 나는 내가 정말 추구하는(또는 추구하고 싶어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잊어가고 있었다. 사업을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들을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 서서히 부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지식은 물론이고 생각과 태도에 더 이상 발전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누던 밥상 위 대화에도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상대가 가족이든 지인이든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그 대화에서 영양가를 찾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 자리에서는 처음으로 짙은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설렜던 마음이 무색하게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큰 틀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그리고 그게 꽤나 한참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리 걸음만 반복하고 있다는 직감이 미치도록 괴로웠다. 답답한 쳇바퀴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서있는 곳이 더닝 크루거 곡선의 극소점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공허한 마음에 매일이 버겁던 나에게 존킴 대표의 존재는 정말 강력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모르는 것을 붙잡고 끊임 없이 공부하려는 자세, 그럼으로써 자신만의 철학과 세계관을 견고하게 지어나가는 발걸음이 정말 멋있어보였다. 내가 잃어버린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 동안 나는 프로젝트 개발과 코딩 공부에 푹 빠진 나머지 지적 수양을 아예 저버리고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스타트업식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맹신이, 기존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에 대해 일종의 적개심을 키워온 것은 아닐까 의심된다(그리고 진짜 스타트업식 삶은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조각은 '배움에 대한 열망'에 관한 것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 기발한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왜 대학 공부를 하고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어"라며 불평만 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게 꽤나 재미있었다. 배움에 대한 자세가 바뀐 것만 같다. 실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 Marshall Goldsmith
내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이정표 같은 인물들이 내 앞에 나타나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지 5학년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때 스티브 잡스를 만났고, 고1 때 일론 머스크를 만났으며, 작년에 토스의 이승건 대표를 만났다. 그리고 올해 존킴이라는 새로운 비콘을 만나게 되었다. 각 단계마다 깨닫는 내용의 깊이가 깊어지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말이 길었는데, 어쨌든 그래서 나도 존킴 대표처럼 블로그를 써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팬들의 환호에 중독된 나머지 영양가는 전혀 없는 뻘글을 양산해대는 흔한 창업가들의 그것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단순한 고민을 가지고도 나보다 먼저 고민한 사람들의 기록을 샅샅이 공부하고 더 나은 해답을 치열하게 간구하는 과정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모든 흔적을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블로그로 기록을 남겨두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단순한 반복 학습보다 반복 시험이 장기 기억 전환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나는 내가 쓴 글들을 몇번이고 다시 꺼내 읽는데, 그럴 때마다 더 나은 내용과 표현 방식을 고민하게 되니 반복 시험의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다. 오랜만에 써보는 글이라 두서가 없음을 양해해달라.
지금으로서는 끊임 없이 공부하고 죽을 때까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가 되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항상 내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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