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의 지각된 기회비용

2021. 6. 19. 03:35Thoughts

요즘 들어 내가 지각하는 선택과 집중의 기회비용이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을 너무 너무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며 살 거란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는데

대학교 학점 같은 (어쩌면 나에게는 거의 필요하지 않을 수 있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놓지 못한다. 그만한 용기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만나 뵈었던 21학번 공대 후배님께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학업 때문에 제대로 못하겠으면 어떻게 해야 되냐"는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다들 처음 만난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려 즉석에서 만든 고민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나중에 우리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나중에 가서 학교 생활이나 학점이 발목을 잡는다면 돌이키기 힘들테니,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휴학을 할지언정 학업도 어느 정도 같이 챙기는 게 맞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옮긴 말이었지만,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강조하는 "좋아하는 일에 오롯이 몰두해라"라는 취지의 답을 해주지 못한 내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최근 알게 된 한 스타트업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학점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자신의 학점은 2점대라는 대표님 말씀을 듣고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용기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뭘 위해서 대학을 다니며 학점을 챙기는 걸까?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취업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어서? 길을 완전히 틀어서 대학원이나 로스쿨에 갈 수도 있어서? 다행히 이번 학기에는 과제가 많지도 않았고 수업에서 얻은 지식도 많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학업으로 인해 내가 입은 손해가 일정 부분 상쇄된 것일 뿐이므로 과제 양이 어땠고 수업 내용이 어땠고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안일 것이다.

 

다음 주 초에 시험이 끝나면 군 입대까지 딱 11주 정도가 남는다. 카투사는 원래도 훈련소 기간이 긴데다 추석 연휴도 끼어 있어서 입대 후 약 세달여 동안 일을 할 수가 없다. 훈련소에서 벽 보고 후회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으니 11주 동안 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몰두하고 싶은 주제와 가설을 확실히 정하고 잠과 휴식 없이 미친듯이 일만 하다가 들어가고 싶다.

 

기말 과제와 테이크홈 시험을 하나씩 남겨두고 여전히 강의자료들을 돌려보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글을 써보았다. 아무쪼록 시험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아직은 용감하지 않은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